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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기독교
   
윤정란
한울아카데미
21,600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014951
     
책소개

『한국전쟁과 기독교』는 북한 정권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시작해, 박정희 정권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과정까지를 실증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필치로 그려낸다. 또한 휴전회담을 둘러싼 논란, 승공 담론의 확산, 전쟁고아 사업과 가족계획 사업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이슈에서 한국 기독교가 남긴 자취를 재발견함으로써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역사를 새로운 논의의 장으로 불러내고, 오늘날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만든 이념과 가치관의 근원에 한국 기독교가 있음을 밝힌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윤정란

저자 : 윤정란
저자 윤정란은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일제시대 한국기독교 여성운동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여성, 종교(기독교), 항일운동, 한국전쟁 등에 관련된 연구를 오랫동안 수행해왔다.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한국전쟁연구국제사업단(Beyond the Korean War) 연구원이다.
주요 저서로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역사』(2003), 『19세기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공저, 2004), 『전쟁과 기억』(공저, 2005),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서북을 호령한 여성독립운동가 조신성』(2009), 『혁명과 여성』(공저, 2010), 『왕비로 보는 조선왕조』(2015)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제1부전쟁
제1장한반도 서북 지역과 월남 기독교인
제2장한국전쟁 구호물자와 선교 자금 그리고 세력화
제3장이승만의 WCC 공격과 KNCC
제2부전쟁 이후
제4장전쟁고아 사업과 한경직
제5장서북청년회 출신들의 정치적 배제와 부활
제6장반공의 재정의: ‘전투적 반공주의’에서 ‘승공’으로
사례박정희 정권과 한국 기독교인들의 연대: 가족계획 사업을 중심으로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속으로

한국전쟁으로 남한의 모든 전통이 일소되어버린 상황에서 미국의 자본주의가 빠른 속도로 침투해 들어왔고,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빨리 이러한 환경에 적응했다. 한국전쟁을 기회로 남한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박정희 정권과 결합함으로써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이 되었으며 핵심 주체가 되었다. --- p.16

서북 지역은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다른 어느 지역보다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다시 말해 이 지역민들은 그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으며, 조선의 신분제 사회를 부정하고 근대 시민사회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 p.39

소련군 사령부와 김일성은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단 한 달 만에 지주제를 완전히 해체했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은 경제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다. 소련군 사령부와 김일성에 반대하던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체포 혹은 행방불명되거나 검거를 피해 월남했다. --- p.63

재입국한 선교사들이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과 밀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광복 전부터 같은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것과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을 대표하던 한경직의 통역을 통한 밀착된 관계, 영락교회와 이북신도대표회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 형성 등에 있었다. 이와 같이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이 교계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과 밀착된 관계를 통해 구호물자와 선교 자금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113

미국 정부는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이용해 세계의 지지와 미국인의 지지를 얻어내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더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WCC는 이를 위한 지지층을 만들어내는 데 앞장섰다. 이승만은 기독교라는 창구를 통해 세계 교회와 미국 교회로부터 전쟁 구호물자를 지원받고 세계와 정보를 교환하면서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휴전회담이 진행되자 이승만은 WCC를 공격함으로써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한국의 기독교를 통제하려고 했다. --- p.139

‘전쟁의 부산물’, ‘거리의 부랑아’로서 범죄 용의자 취급을 받던 전쟁고아들은 반공과 한미 혈맹의 상징물로 재발견되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신문, 잡지, 라디오, TV, 영화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국 언론은 고아원을 경영하는 한국인에 대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한 반면, 고아원을 지원하거나 경영하는 미군에 대해서는 “자애의 손”, “위대한 사랑의 사도”, “아름다운 인류애”라고 표현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이러한 미군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면서 미군의 자애와 사랑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 p.173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에는 박정희의 후원이 크게 작용했다. 박정희가 시애틀에 도착하자 어린이 합창단은 국제공항에서 그를 환영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어린이 합창단이 순회공연으로 미국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1961년 11월에 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합창단은 귀국 후 박정희를 찾아가 귀국 인사를 했다. 박정희는 이후 어린이 합창단을 계속 지원했으며, 육영수와 박근혜도 이들을 크게 지원했다. 어린이 합창단은 박정희 정권을 미국인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한 ‘꼬마 친선 외교 사절’이었다. --- p.210

서북청년회는 결성되자마자 경찰과 미군정의 후원을 받아 활동하면서 어떤 청년 단체보다도 좌익 소탕의 전위대 역할을 수행했다. 서북청년회가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행동한 것은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948년 남한 단독의 총선거가 결정되었을 때 서북청년회 출신들이 이를 두고 갈등한 데서 알 수 있다. 이북학생총연맹은 김구의 경교장 경비를 담당하면서 남북 협상과 단선 반대를 지지했다. 이들은 북한 지역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로 격렬히 투쟁에 나섰는데, 단독 총선거 결정은 잠정적으로 이 지역을 방기하는 정치적 결정으로 판단했다. --- p.240

한국 기독교인들이 제기했던 승공 담론은 일반 군사정권 지지자들에 의해 널리 홍보되고 선전되었다. 예를 들어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던 유봉영은 승공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인데, 이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토대가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민주주의 체제를 유보한 채 경제적 성장부터 먼저 달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전개되었다. --- p.293

싸울 때는 무조건 적대적인 싸움이 아니라 적극적인 민주주의 선전과 실천을 통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정치적 부패 대신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천하고 사회적 빈곤을 제거하는 것만이 공산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진정한 반공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반공의 재정의는 박정희 정권과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사상적 명분이 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 공산당보다 잘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311

[예스24 제공]